티칭 & 코칭

학교 출강 코딩 강사의 애환

책먹는아인 2022. 5. 22. 07:34

작년 겨울방학에 특강을 나갔던 한 중학교 수업. 당시 10차시밖에 안되는 수업인데 하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다.

먼저, 학교측에서 학부모들에게 교재비 걷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시중 교재를 복사해서 사용하길 원했다.(;;;;) 그건 안되겠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그럼 프린트물을 만들어서 사용하라는 주문.

 

 

간단하게 요약정리나 하고 예제 조금 실으면 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또또 나의 열정이 막 불타올랐다.

 

그래서 까짓거 그럼 만들지 뭐! 하면서 교재를 만들게 됐다. 한달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었는데, 마지막 2주정도는 정말 밤을 새워 몰입해서 만들었다. 매일 하루 3~4시간정도 잤던 것 같다. 아마 시작한지3일째되는 날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단기간에 만든 교재니 뭐 퀄리티가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10차시안에 함수까지 갈 수 있도록 구성하면서 최대한 쉽고 이해가 잘 가도록  최선을 다했다. 

강의를 하면서도 교재를 완성해나갔기 때문에 그날그날 교재를 출력해 들고 갔다. 하루에 한사람에게 주는 양이 몇십장이어서 집에서 다 출력해가기가 아까웠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부만 집에서 출력해서 학교에 가서 복사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복사를 마치면 내 팔에는 약 100~200장가량 프린트물이 들려있곤 했는데 학교측에서는 내가 들고 있는 종이 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단 몇장이면 될 줄 알았냐고...

 

 

 

 

 

거금 2,000원을 털어 일일히 쫄대화일에 다 끼워줬지만 분실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결석한 날의 프린트물은 없거나 했다. 또 나는 정성들여 컬러로 제작했건만 학교 복사기로 흑백복사해서 나누어주다보니 글씨도 잘 안보이고 내가 원하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컬러 복사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내가 매일 A4를 100장 이상 써제끼는 걸 보고 놀라시는 교감선생님을 보고 참았다) 나는! 고퀄! 고퀄이 좋다고!

 

그래도 6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1주일동안 정말 재미있게 수업했다.

그 중 몇명은 차출(?)되어 온터라 코딩이 뭔지 타자치는 방법도 모르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흥미를 가지며 자기는 이제 해커가 되겠다고 장난치기도 했다. 갈수록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니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10차시 수업을 마치며 정신없이 몰아친 스케쥴안에서 아이들이 개념들을 다 이해했는지 걱정됐고, 기왕 의욕이 올라온 아이들을 위해 남은 과정은 혼자서라도 공부할 수 있도록 교재를 주고 싶었다.

혹시 교재를 제본해서 만들어주면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물었더니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열정적으로(?) 받고 싶어했다. 그게 왜 그렇게 뿌듯했던지. 내가 만든 교재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83.3%나 되다니! 

 

마치 단체손님 예약 주문을 받는 느낌

 

 

 

 

소량 제본을 맡기려니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권당 2만원이었던가. 그래서 '이럴거면 차라리' 병이 도지고 말았다. 십만원주고 제본할거면 차라리, 제본기를 사서 직접 하자! 사두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쓸테고, 그럼 비용도 오히려 더 싸게 친다! ... 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열심히 검색을 해서 제일 가격대비 품질좋은 열제본기 한대와 열제본 커버 한세트를 샀다. 

그리고 종이도 100g짜리 질 좋은 용지 한박스를 샀다. 기왕 만들어주는 거 튼튼하고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오래오래 보도록!

 

어머. 그런데 5년간 잘 쓰던 프린터가 오랜만에 쓰려고 보니 고장났네? ... 프린터도 새로 샀다. ...

 

 

 

 

그때 애들에게 주려고 제본한 교재

 

 

 

총 400여장을 출력하는데는 6시간 걸렸다. 약속한 날까지 가져다주기 위해 밤을 꼬박새워 프린트하고 제본까지 마쳐서 학교로 가져다 드렸다. 책을 받길 원했던 아이들 목록과 함께.

 

그러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맞다. 실로 그때 나는 가벼웠다.

왜냐하면 내 지갑이 텅 비어버렸기 때문이다. 약 2주를 밤새 준비하고 1주일간 열심히 강의하고 남은 것은 제본기 한대와 프린터 한대였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뭐 나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맨 처음에 강의 계약을 할 때 1년 계약기간으로, 첫 수업에서 학생들로부터 만족도가 잘 나오면 그 뒤 남은 기간동안 수업을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제쯤 연락이 올까. 매일매일 설레었다. 만족도 조사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서 담당 교사께 톡으로 여쭤보기도 했다. 수업을 지속하고 못하고보다 아이들이 얼마나 내 수업에 만족했는지, 내가 수업을 재미있게 했는지 충분히 잘 전달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담당하신 분께서는 답변은 주신다고 해놓고도 없었고, 몇차례 문의하니 본인은 새학기에 다른 학교로 가신다며 인수인계를 잘 해놓을테니 걱정마시라 하셨음에도 결국 아무런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가셨다 한다.

 

 

뭐라구요?

 

 

 

학교측에서는 나와 면접보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 했던 약속들은 모두 깡그리 잊은 듯 새롭게 강사를 뽑는 공고를 냈고, 나는 1년 계약서를 써놓고도 다시 응시해서 면접도 다시 보고 다시 계약서를 또 쓰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다며 잘 나눠주겠다고 하시던 내 교재들은 한권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채 캐비닛에 쳐박혀있었고, 일을 이어받은 새로오신 선생님이 그걸 발견하셨다고 한다.

 

 

 

부들부들...

 

 

이 과정들에서 나는 상처를 받았다. 학교가 나에게 했던 약속은 물론 계약서에 적혀있던 사항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철썩같이 약속했던 교재들이었는데 단 한사람의 손에도 가지 못한 것이 속이 상했다. 후에 다시 만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교재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강사인 내가 하면 심각한 잘못이 될 일들이 학교측에서는 아무 미안함도 없이, 문제 될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분명히 첫 계약서에 쓰여있던 계약기간조차 무시하고 새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계약서 내용을 강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데 말이다. 

 

 

 

 

 

 

이 일은 나의 열정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새로운 일에 불꽃이 튀거나 하면 또 완전히 몰입하고 만들어내는 걸 즐긴다.

하지만 다시는 학교라는 장소에서 그만큼 열의를 쏟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어쨌든 그때의 경험은 좋은 자산이 되긴 하였다.덕분에 제본기도 생기고(눈물) 프린터도 새로 사고(눈물x2) 짧은 시간에 교재를 만들어내는 요령도 익혔으니 말이다.

지금은 결국 그 학교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또다시 교재라던지 하는 부분에서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요구를 받는다면 언제라도 그만두려고 한다. 

 

 

네.

 

 

 

비단 이 곳 뿐만이 아니라 일을 하면 할수록... 여러가지로 학교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겐 참 안맞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새롭고 좋은 교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데 미리 정해둔 교재가 아니면 쓸 수 없다거나, 강사에게는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을 원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려고 하면 난색을 표한다거나 ... 지원없이 알아서 하길 바란다거나...

딱딱 정해진대로 맞춰진대로 하지 않으면 곤란한 것도...

 

 

 

 

 

여러모로 나에게는 참 갑갑하게 느껴진다. 나는 자유롭게,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배움을 만끽하고 머물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학교의 요구에 맞추려다 보면 그럴 수가 없다.

이렇게 학교랑 안 맞는 내가 어쩌다가 또 학교로 흘러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